2010년 12월 20일 월요일

성인용품점을 하기까지..(1)

성인용품점을 하기까지..(1)


그 당시 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아버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큰 사무실도 아니었고 동네에 부동산 사무실이
대게 그렇듯이 우리 아버지의 영업방식 또한 평범했고, 나 또한
(세이노님을 알기 전) 깔끔한 옷에 사무실에 나이에 비해 그럴싸
해보이는 부동산이라는 간판에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이노의 가르침을 읽고 모든게 바뀌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항상 얘기했던 장미빛 희망..
우리가 미래를 얘기할땐 항상 부자였고 풍요로왔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는 항상 가난했고 과거에도 가난하게 살았다.

얼마나 가난했냐고? 밥 굶어 죽을만큼 가난했냐고?
물론 그건 아니다. 밥은 굶지 않았지만 그저 대게의 이야기에서 그러하듯
어린시절 지하집 셋방살이 전전해서 지금은 비록 좋지 않지만
작은 우리집도 갖게 되었다.

절대적 가난은 아닌 상대적 가난이겠지..
나라경제가 좋아서 밥굶어죽지 않으니 그걸로 된건가?
배부른 소리하는건가 내가?
난 결코 대인이 아니다. 모두의 행복 따위에 눈꼽만큼도 관심없다.
내 자신과 주변의 행복 챙기기에도 평생이 모자랄것 같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삶에 없어서는 안될 것이
경제적인 여유로움인것을 난 알고있었다.

그(세이노)는 글로써 나에게 노력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얘기해주었다.
그저그런 자기개발서적의 잡설 따위가 아닌 자신의 삶을 보여줬다.
이렇게 살아보라고..

그때부터 내가 업으로 하고있던 부동산공부외에 경매와 주식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조금씩 하기 시작하니 종자돈이 필요했다.
당시에 내 아버지 사무실은 유지해 나가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월급따위도 기대할수 없었다. 조급한 마음을 참을수 없어 저녁시간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였는데 주변에서 일하면
혹시 아는 사람이 볼까봐(난 아무렇지 않았지만 품위유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아버지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동네에서 지하철로 40여분 가량
떨어진 동네에서 아침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미련한 짓이었다. 의욕만 앞서 시간 조절을 하지 못했다.
사무실 창고에서 2~3시간 정도씩 눈붙이고 아침까지 편의점에서 일하고
다시 부동산 사무실문을 열었다. 몸이 버티질 못했다. 결국 2달 조금 넘게
하고 그만두고 말았다.

 일을 그만두고 심사숙고 끝에 부동산을 그만두었다.
내 뜻대로 가게를 운영해 볼수 없다는 점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연륜과 경험과 자신의손님이 있는 다른 중개업자들과 경쟁해서 짦은 시간안에
이길수 있으리란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같이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아버지의
실망스러운 모습 또한 그만두게 된 원인중의 하나였다.

일을 그만두고 엄's가 일하고 있던 안마시술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엄's와 나는 중학교 다닐때부터 만난 소위 동네 불알 친구였다.

(2007년 7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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